문득 어린날의 철부지 같은 모습을 한 다른 녀석을 어제 만났다.
결국에는 내 자랑이 되어 버린 듯한 시간이었지만,
문득, 내가 고등학교 수업 쉬는 시간에 3층 난간에 몸을 반이나 내밀고 창틀이 걸터앉아
구름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들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고 인간으로 죽자"
아주 우숩게 보이겠지만, 한 때 나는 완벽주의자 였고, 모든것을 완벽하게 하고, 모든것을 혼자서 해낼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그런게 존재 가능하다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지.
그래서 그때는 "신이 되고 싶었어" 라고 생각하며 지금 회상을 하게 된다.
과연 그 때의 생각대로 신의 길을 걸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물론,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니 이런 생각을 하는게 무의미 하겠지만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은 나에게 커다란 시련이었고,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다고 생각 되어진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고 인간으로 늙어 인간으로서 죽는것.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당연한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더 군자, 성인, 현인에 가깝게 생각이 되어지는
세태에 조금은 많이 어색하고, 매우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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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의 나는 나름 방황을 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물론 대학에 와서, 군대 갔다 온 직후 까지도 몰랐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때 보게된 책 항공 연감.
이 한권의 책에 하늘에 꿈을 갖고 처음으로 부모님의 의사에 반하여, 내가 하고 싶은것을 처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항공대 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온 이야기는
"굶어 죽기 딱 좋다."
용기를 내어 한번 이야기를 했는데 한번에 거절 당해서 풀이 죽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인했다면 이라는 가정 조차 필요 없지만, 그 때는 그랬다.
그래서 더욱더 게임에 빠져 들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100일전
놀던 애들 조차도 공부를 하는 분위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치는데 나도 어느정도 나오는데 한번 해볼까?"
그리고는 예전에 잠시 접었던 꿈을 생각해 냈다.
항공대 우주항공공학과.
그래, 내가 그 점수를 내서 가겠다고 하면 말리시지는 못하겠지.
그래도 100일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지. 내가 목표로 했던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3차 합격까지 갔다면 붙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결국에는 난 대학교를 포기했고, 목표를 잃은채 막연히 용산이나 가서 컴퓨터 배우면서(배울게 있었겠냐 마는..)
먹고 살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부모님과 누나는 포기 하지 못하고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가족들은 옷을 차려입고 협박을 해주셨다.
"아들 옷 입고 곱게 타고 갈래? 트렁크에 실려 갈래?"
선택권도 그걸 판단할 의지조차도 없었기에 그냥 타고 가길 택했다.
모 대학 정문, 북적이는 사람들. 그리고 면접. 지금 생각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느 분이었는지 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데모판으로 유명한 대학에 넣으시고 상당히 고심이 많으셨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물론 뜻이 있어 간 대학이 아니다 보니 1학년도 빈둥빈둥,
그래도 오랫동안 만져온 컴퓨터이기에 적절한 학점으로 살아가다가 남들이 그러했든
C언어를 배우고 Java로 넘어 가면서 좌절을 느끼고 다들 군대 가길래 나도 군대를 가버렸다.
일부 학군단이라던가 폼을 내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기왕 가야 할 군대라면 그냥 곱게 가서 빨리 끝내고 오자" 라는 게 동기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군대라.. 별로 이야기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다.
전역 한달 남겨 놓고 대대장이 바뀌면서 유도 심문에 걸려든 너무나 멋진 우리 1년 후임(아들이라고 하지)이 긁어 주시는
바람에 말년 휴가 1주일 전에 휴가 1주 갂는 조건으로 영창안가고 무사 제대를 할 수 있었지만,
그 부대 대기 2주일간 나름 내부실에서 빈둥대고 놀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부서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랬던것에 비하면
다른 내무실 애들과 함께 삽질이나 하러 다니는게 훨신 마음은 편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말년 휴가 갈려는 순간에 공문이 내려와서 군생활 2주 줄었으니 휴가도 1일 더 갂아 주라는 덕분에
말년 휴가는 14박 15일에서 6박 7일이 되었고, 그리 길지 않은 휴가를 다녀온 사이에
날 긁어 주신 아들은 매우 피폐해져 있었다.
다른 후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꽤나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머.. 결국은 내 자랑이 되겠지만, 나름 부대원들을 챙겨주고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었던 나를 믿고 따르던 애들이
개념은 안드로메다 고추장 쏘스에 비벼드셨다고 내가 없는 6박 7일간 정신 교육을 시켜 주는 사람에 꽤나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말년 휴가 복귀후 1주일 뒤에는 전역을 하게 되었고, 생각치도 못한 내무실 후임들의 경계 세례를 받으며
눈가가 촉촉히 부대를 걸어 나왔다.
"나 간다. 좆뺑이 쳐라~ ㅋㅋㅋ"
(우르르 2열 종대로 서서) "충성~!"
"아 꺼져~~ 나 민간인이야 ㅋㅋ 뻉이쳐라~" (ㅠ.ㅠ 아놔 이런 감동)
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