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책은 나의 가장 큰 스승이자 친구였다.
어두운 서재에 빼곡히 꽂혀있던 책은
"이거 다 읽어 보겠어 라는" 현재의 꿈이자,
"서재를 갖고 싶다"는 미래의 꿈이었다.
누나 읽으라고 사둔건지 내가 읽으라고 있던건진 모르겠지만
40여권에 달하는 백과사전 두 전질은
좁은 바닥에 앉아, 세상을 그리고 과거를 갈 수 있던 방법이었고,
얕지 않은 깊이와 다양한 내용은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으며,
호기심은 집중력을 길러주었고,
집중을 해서 보게 된 다양한 지식은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기억에 남는 그리고 인생을 바꾸었고, 아직 이루지 못했던 꿈이 되어준 책은
중학교 때 보았던 항공기 연감이었고, 비행기를 좋아했으나 이미 시력은 발바닥에 달려있었고
기술을 좋아했던 나는 항공대를 가고 싶었으나
집, 학원, 학교 모두에게 거부당하고 날개가 잘린채 꼭두각시가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가장 좋아던 건.. (야간 타율학습으로 악평이 자자한 학교였지만)
학교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고,
"거기 있는 책 다 읽어 보겠어"에서
"한 칸이라도 다 읽어 보자"로 바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도서관원들이 귀찮아 해서 따로 관리하던 내 도서대여 카드는 하루 세줄씩은 채워져 나갔다.
(남녀공학이었으면 먼가 로맨틱한 전개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남고니 그런 로망따윈 ㅋㅋㅋ)
책을 읽는 동안에는
시간도 공간도 생각도 상상도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렇게 시끄러웠을 친구들의 수다도 들리지 않았고
나만의 세상에서 가능할 방법을 찾아 헤메었던 것 같다.
수 많은 정보들이 지식이 뇌에 쌓이면서
마치 신의 대리인이 된 착각에 빠지다 못해 신이 되고 싶었고
인간과 신을 가르는 선에서 내가 보아왔던 지식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론 끝에
그 길을 포기하고
다시 책을 읽기 까지 17년이 걸렸다.
17년간의 절독
17년간의 내가 쌓아올린 정보의 조합과 그 알고리즘의 검증
그리고 아이로 인한 스스로의 부족함의 깨달음과 정보의 목마름.
예전에 얻은 깨달음
사막에서 낙타의 눈을 가리고 직진을 시키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바퀴 돌아온 같은 자리지만,
돌아온 낙타에게는 그 자리에만 있던 다른 낙타와는 다른 어떠한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즉, 한바퀴 돌아온 그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은 처음에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이 아니다.
17년 전의 미친듯한 3년간의 하루 세권씩의 독서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지금은 일주일에 세권도 못 읽는 수준이라 독서량으로 다시 한번 그 때를 깨고 넘어서기 힘들겠지만
지식뿐만 아니라 지식의 분류방법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는
그 수 많은 시간과 책들이 나에게 준 보상이니까
또 다른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시 책과 같이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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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먼가 쓰고 나니 손발이 오글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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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키우고. 육아/교육책 읽으면서 깨달은거
포기하면 편해~ OTL
무소유의 마음으로 돌아가기에는 가진 게 너무 많아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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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거 없다.
다른 매체에 비해서 밀도가 높다는 것. 그리고 책으로 출판될 만큼 정제되고 신뢰가 가는 정보가 드물다는 것.
비록 그 정보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을 통한 지식의 흡수와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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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의외로 책을 좋아하는 이유로 검색 유입이 있어서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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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가 좋아했던 이유는
어쩌면.. 책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묵묵히 내가 무언가를 할 때를 기다리고, 내가 발견해 줄때 까지 기다리고 있고
내가 발견하고 읽고서도 묵묵히 내가 무언가를 말할때를 기다려주는 그런 존재?
책이 나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하지 말라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녀석 말은 안하는데 자꾸만 속삭임이 들려오니까
그러고 보니 책은 나무 같다.
나무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